카테고리 없음 / / 2025. 7. 5. 23:40

심리 상담과 긍정 심리학의 상호 보완

뭉게구름이 낀 하늘과 잔디 위에 누워 휴식하는 남자

심리 상담은 들어줍니다

침묵에는 마치 마법 같은 무언가가 있습니다. 단순한 ‘말 없음’이 아니라, 존재하는 침묵.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이며, 말보다는 감정에 귀 기울이는 그 공간. 심리상담사로 일한 지난 30년 동안, 저는 이렇게 배웠습니다. 치유는 말보다 먼저 시작된다는 것. 눈물이 흐르기 전에, “저는 길을 잃었어요”라고 말하기도 전에, 그들은 이미 묻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나를 봐줄 건가요? 여기에 있어줄 건가요?”사람들은 심리학이 기술과 기법이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인지 재구성, 마음 챙김, 트라우마 기반 치료…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제가 배운 진짜 치유는 때로 그저 도망치지 않고 옆에 있어주는 것입니다. 한 번은 28세 청년이 상담실에 들어왔습니다. 세 번의 자살 시도가 있었고, 후드티를 머리까지 눌러쓴 채, 웅크린 모습이었습니다. “이번 주에 당신을 붙잡은 건 뭐였나요?” 그는 조용히 말했습니다. “잘 모르겠어요… 그냥, 호기심?” 저는 조언하지 않았습니다. 희망을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단지 이렇게 말했죠. “그거면 충분해요. 호기심도 신성한 감정이에요.” 그는 처음 듣는 말처럼 저를 바라봤습니다. 어쩌면 정말 처음이었는지도요.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점이 있어요. 긍정심리학은 독성 긍정(Toxic Positivity)이 아닙니다. 슬픔을 웃음으로 덮는 것이 아니라, “그 외에 무엇이 진실인가요?”를 묻는 것입니다. 절망 속에서도 작은 의미가 있을 수 있을까요? 고통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무언가가 남아있을까요? 이혼을 겪고 있던 60대 여성 내담자가 말했습니다. “제 인생 전체가 거짓말 같아요.” 그녀에게 물었죠. “그 결혼생활 중, 살아 있다고 느낀 순간이 있었나요?” 긴 침묵 끝에 그녀는 말했습니다. “결혼식 날, 호수 앞에서 춤췄을 때… 그 순간은 세상에 우리 둘만 있는 것 같았어요.” “그 순간은 진짜였네요.” 저는 말했습니다. “아픔을 없애지는 못해도, 기쁨이 존재했던 것도 사실이에요.”우리는 고장 난 기계가 아닙니다. 우리는 교향곡입니다. 때론 슬픔, 때론 기쁨, 무력감과 환희가 엉켜 있는 복잡한 존재. 상담은 도구 상자가 아닙니다. 두 사람이 함께 부르는 노래입니다. “먼저 부르세요. 제가 따라갈게요.”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긍정 심리학은 “그냥 행복해져”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릅니다. 창의성은 생존 본능이라는 사실을. 절망 속에서 봄을 상상하고, 슬픔 속에서 손가락으로 나선을 그리고… 그건 뇌가 말하는 거예요. “너 아직 살아 있어. 아직 신경 써.”라고 말입니다. 저는 내담자들에게 편지를 쓰게 합니다. 절대 보내지 않을 편지요. 목적 없는 산책을 권합니다. 자신의 고통을 비유하게 합니다. “제 불안은 손목에 매달린 풍선 같아요. 늘 저를 끌고 가죠.” 그게 바로 치유의 언어입니다. 72세의 어느 미망인이 말했습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잘 그리진 않지만… 색을 섞을 때 외롭지 않아요.” 그게 전부 아닐까요? 우리는 인상적인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견디기 위해 창조합니다. 어떤 날은 약 대신 시를 처방합니다. 하피즈, 릴케, 메리 올리버. 한 알코올 중독 회복 환자가 이렇게 말했죠. “제가 가장 많이 읊조린 구절은 이것이에요. ‘너는 착할 필요 없어. 단지, 네 몸이 원하는 것을 사랑하도록 내버려 두면 돼.’” 그 구절이 아무도 못 구할 때 그를 구했습니다. 감정은 고장이 아니라 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감정을 ‘문제’라고 생각해요. “왜 이렇게 불안하죠?” “왜 자꾸 울게 될까요?” “감정을 너무 많이 느껴요, 저는 이상한 걸까요?” 아니요. 전혀 아닙니다. 감정은 고장이 아닙니다. 감정은 ‘길’입니다. 당신이 느끼는 감정은, 당신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감정은 메시지를 보내는 메신저죠. 불안은 말합니다. “지금 네 안에 무언가 중요해.” 슬픔은 속삭입니다. “너는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야.” 분노는 외칩니다. “이건 너에게 너무나 중요한 일이야.” 저는 내담자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오늘 할 일은 이 감정을 없애는 게 아니라, 그 감정을 ‘번역’하는 것이에요.”, 우리는 감정을 억누르도록, 참도록, 참는 걸 미덕이라 배우며 자랐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으로는 요, 가장 용감한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직접 바라보는 사람들입니다. 두렵지만요. 낯설지만요. 그 감정 속에 진짜 ‘자기 자신’이 숨어 있거든요. 그냥 행복해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긍정적으로 바라보자라는 거예요.

 

 

 

상호 보완적 치유 

우리는 너무 자주 정답을 찾으려 합니다. “내가 왜 이러는지 알아야 해.” “나는 왜 늘 반복할까.” “도대체 내 문제는 뭘까.” 그 질문들을 마주할 때,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혹시요, 지금 당신은 정답이 아니라 이야기의 일부에 서 있는 건 아닐까요?”  우리는 이야기예요. 변화하고, 비틀리고, 챕터마다 다르고… 어떤 장은 너무 슬퍼서 다시 읽고 싶지 않고, 어떤 페이지는 그렇게 따뜻해서 자꾸 떠오릅니다. 심리상담은 그 책장을 한 장씩 천천히 넘기는 작업입니다. 가끔은 내담자 스스로 이렇게 말합니다. “이건 내가 쓴 이야기 같지 않아요.” 그러면 저는 말해요. “그럼, 지금부터 당신이 다시 쓰기 시작하면 돼요.” 우리는 모두 작가입니다. 자신의 삶을 다시 써 내려갈 수 있는 힘이 자신안에 있답니다. 심리 상담은 함께 숨 쉬는 일입니다. 심리상담이라는 단어는 너무 ‘무거운 일’처럼 들릴 수 있어요. 하지만 실제로 상담이란, 두 사람이 함께 숨을 쉬는 일이에요.

한 사람은 아파서 숨이 가쁘고, 한 사람은 그 호흡에 맞춰 천천히 말합니다. “괜찮아요. 여기 있어요. 제가 같이 있을게요.”

정답을 주기보다, 그 숨결에 함께 있는 것이 진짜 치유입니다. 어떤 날은 말보다 침묵이 더 많은 의미를 주고, 어떤 날은 눈물이 최고의 언어가 됩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아주 작지만 진짜 웃음이 돌아오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저는 그런 순간을 봅니다. 10년 동안 우울증을 겪은 사람이 처음으로 창밖을 바라보며 말합니다. “저기 구름 예쁘네요.” 그 한마디에, 저는 마음속으로 박수를 칩니다. 회복이란 바로 그런 순간입니다. 크게 보이지 않지만, 마음 깊이 울리는 변화. 그 한 줄기 빛을 보았을 때, 저는 다시 확신합니다. 사람은 절대 혼자서는 무너지지 않는 존재라는 걸요. 누군가 곁에 있을 때, 우리는 다시 일어납니다. 다시 걷습니다. 그리고, 다시 사랑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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