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질병이 아니다
사춘기란 단어는 너무 뻔하다. 10대는 그 이상이다. 모순과 진동, 충돌과 침묵의 복합체. 하루에도 열두 번 사랑하고 미워하며, 어제의 자신과 오늘의 자신이 낯설게 느껴지는 시기. 이 글은 50대 여성 임상심리학자의 시선으로, 10대가 겪는 ‘감정의 무제’ 속에서 긍정심리학이 던질 수 있는 단 하나의 따뜻한 시선을 탐색한다. 논리가 아닌 리듬으로, 정답이 아닌 공감으로. 진료실에 들어온 한 여학생이 말했다. “혹시 저… 조울증일까요?” 그녀는 자신이 감정 기복이 심하다는 이유로 병명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감정은 병이 아니에요. 감정은 그냥… 감정이에요.” 10대들은 감정이 너무 커서 견디기 어렵고, 그걸 설명할 단어가 부족해서 스스로를 오해한다. 그러다 보면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싶어진다. 우울, 불안, 분노, 공허, 초조, 혼란. 하지만 긍정심리학은 말한다. 이름 없는 감정도 감정이다. 감정은 분석되는 순간 살아있는 감각을 잃는다. 10대에게 필요한 건 해석보다 인정이다. ‘그 감정이 거기 있었음을 함께 알아주는 일’. 그 한 줄이 상담실을 울리는 말이 된다. PERMA는 그들에게 너무 어렵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실천하고 있다 긍정심리학에서 말하는 PERMA 모델. Positive Emotion, Engagement, Relationships, Meaning, Accomplishment. 하지만 10대에게 이 영어 약자는 낯설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들은 이미 이 다섯 가지를 그들만의 방식으로 실천하고 있다.
- Positive Emotion은 좋아하는 친구와 문자 주고받는 순간,
- Engagement는 그림 그리며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오후,
- Relationships는 서로 말없이 이어폰을 나누는 교실 끝자리,
- Meaning은 친구의 우울함을 함께 견디기로 한 밤샘 채팅,
- Accomplishment는 수학을 못 풀다가 결국 혼자 정답을 찾아낸 순간.
이 모든 것이 PERMA다. 이론은 없지만, 경험은 진하다. 그래서 긍정심리학은 설명되어야 할 이론이 아니라 기억되어야 할 감정들 속에 존재한다.
강점은 성격이 아니고 감정의 방향성이다
한 소년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전 공부보다 감정이 더 어려워요. 성적은 공식이라도 있는데, 이건 뭐… 그냥 와요. 감정이, 그냥.” 긍정심리학이 10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문장은 아마 이것일 것이다. “그래도 괜찮아. 감정이 왔다면, 그건 네가 사람이라는 증거니까.” 감정은 도달하는 게 아니라, 도착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감정을 받아들이는 연습이 긍정심리학에서 말하는 정서적 회복력의 출발점이다. 긍정적인 감정을 억지로 끌어올리는 게 아니라, 부정적인 감정이 스며드는 속도를 함께 버텨주는 것. 그것이 긍정의 또 다른 얼굴이다. 긍정심리학에서 말하는 강점(strength)은 ‘나는 친절한 사람이다’ 같은 성격 형용사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감정이 향하는 방향이다. 한 소녀는 자신이 ‘잘 웃는다’고 말했다. “근데요, 제가 웃는 건 진짜 웃어서가 아니라 다른 애들 분위기 흐리지 않으려고요.” 그 말은 강점이다. 공감이라는 감정, 배려라는 반응, 그리고 스스로도 모르게 만들어진 정서적 전략이다.긍정심리학의 강점 이론은 ‘남들보다 잘하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라, 감정이 머무르는 지점이 어딘지를 아는 것이다. 10대의 강점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건 노래방 마이크를 건네주는 손, 혼자 남은 친구 옆자리에 앉는 침묵, 누군가의 말을 진심으로 들어주는 청각. 그 모든 게 강점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주 감정의 언저리에서 발견된다.
10대의 긍정심리학은 ‘이해’가 아니라 ‘함께’이다
한 학생은 내게 말했다. “선생님, 너무 말이 많으면 오히려 멀어지는 것 같아요.” 나는 그 말을 오래 기억했다. 긍정심리학은 너무 설명이 많다. 하지만 감정은 설명에 길을 잃는다. 그래서 때로 상담실에선 말을 줄인다. 침묵이 길어지면, 감정은 올라온다. 말하지 않아도 함께 울 수 있는 공간. 그게 긍정심리학이다. 감정이 튀어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 그 시간을 버텨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10대가 긍정심리학을 실천하는 순간은 그들이 누군가의 침묵 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발견할 수 있을 때다. 긍정심리학이 추구하는 ‘긍정’은 항상 웃고, 활발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상태일까? 아니다. 진짜 긍정은 누군가의 감정 곁에 조용히 존재하는 능력이다. 10대는 누가 자신을 변화시키려 할 때 가장 많이 방어한다. 하지만 누군가 그냥 ‘같이 있어줄게’라고 말하면 조금씩 문을 연다. 긍정은 변화가 아니라, 공감의 시간이다. 긍정심리학은 10대를 가르치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오히려 10대에게 배워야 할 감정 언어의 사전이다. 그들은 아직 감정을 다 표현하지 못하지만, 그 감정은 누구보다 생생하다. 우리는 설명보다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논리보다 그들의 표정을 읽으며, 이론보다 그들의 하루를 기억해야 한다. 긍정심리학은 그러한 감정의 동행학이다. 그리고 나는,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그 길 위에 함께 있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