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글이 아닐 수도 있다. 누군가에겐 상담 일지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오래된 일기장의 구겨진 한 페이지일 수도 있다. 아침이다. 커피를 내린다. 프렌치프레스를 누를 때의 손의 감촉은 아직 따뜻하고, 어쩐지 뇌의 언어 같기도 하다. 삶을 상담실에서 흘러가는 이야기로 듣는 나에게, 2024년의 상담심리학은 더 이상 ‘마음’이 아니다. 뇌의 언어를 이해해야 한다.나는 뇌를 사랑하게 되었다. 어쩌면 그건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감정들이 자꾸만 쌓여갔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당신의 감정은 뇌의 반응입니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정지했다. 감정이 마음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뇌에서 나온다는 말은,어쩐지 배신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희망처럼 들린다. 왜냐하면 뇌는 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24 상담 심리학 키워드- 뇌
50대의 나는 요즘 ‘감정’이라는 단어를 잘 쓰지 않는다. 대신 ‘뇌 반응’, ‘편도체 활성’, ‘전전두엽 조절’ 같은 말을 쓴다. 어떤
40대 여성이 내담 중에 한 말이다. “그냥 화가 나요. 아무 이유 없이요.” 그녀의 눈동자는 명확했다. 이유를 찾고 있었던 게
아니다. 그저 느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편도체가 지금 아주 바쁘게 움직이고 있을 거예요. 위험이라고 해석하고 있거든
요. 하지만 당신은 안전합니다. 여기서는.” 그녀는 조금 눈을 내리깔았다. 나도 그랬다. 뇌는 말이 없다. 하지만 행동한다. 그래서 우리는 알아야 한다. 뇌는 말하지 않는다. 뇌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런데… 내담자가 말을 한다. 고통을 말로 표현한다. 하지만 그 말은 가끔 뇌가 만든 위장일 수도 있다. 이 시대의 상담은 이제 “말”을 넘어 “신경”으로 가고 있다. 신경가소성이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을 겁니다. 처음에는 너무 과학 같아서 거부감이 있었지만, 지금은 매일 그걸 의지하며 상담한뇌는 바뀐다. 기억은 바뀐다. 감정 회로도 바뀐다. 신경망은 사랑처럼 유연하고, 실패처럼 고집스럽다. 나는 종종 그들의 신망 사이를 걷는다. 마치 이파리 사이를 조심히 걷는 산책자처럼. “여기에서 숨 쉬어도 괜찮아요.” 나는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내담자는 듣지 않는다. 그게 뇌의 특성이다. 안전하다는 말을 들어도, 뇌는 여전히 과거에 반응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뇌에게 신호를 줘야 한다. 자꾸, 반복해서, 부드럽게 말이다.
상담자는 뇌라는 숲 속을 함께 걷는 사람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당신은 아직도 상담이 효과가 있다고 믿어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나는 2023년 겨울, 한 자폐 스펙트럼 청소년과의 상담을 떠올렸다. 그 아이는 내 눈을 절대 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림을 그렸다. 그림 속엔 수없이 많은 고리, 고리, 고리들이 얽혀 있었고, 나는 그것이 그의 신경망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그는 나에게 ‘노란색 고리’를 선로 주었다. “이건 당신 뇌에 있는 고리예요.” 나는 그날 집에 와서 울었다. 내 뇌는 그걸 공감의 신호로 해석했고, 내 마음은
그걸 사랑의 언어로 받아들였다. 무작위성 속에서 피어나는 상담의 예술과도 같다. 상담이란 과학인가, 예술인가? 나는 이는 잘 모르겠다. 상담은 정리되지 않는다. 내담자의 말은 논리적이지 않다. 뇌는 예측할 수 없다. 그리고 그게 너무 좋다. 나는 내담자와 함께 걷는다. 지도를 버린 채, 나침반도 없이. 그 대신 감정의 날씨, 뇌의 기압, 신경의 흐름을 느끼면서. 2024의 상담은 말로 시작하지 않는다. 그것은 눈빛의 흐름의 흐름과 숨소리의 리듬을 느끼고 무릎을 꼬는 각도와 - 손의 떨림 그리고 상담자가 숨기고 있는 감정까지 느끼는 것이다. 모든 것이 신호다. 그리고 뇌는 그 신호를 해석한다. 오래된 방식대로. 아주 어릴 적 만들어진 회로대로. 하지만 바꿀 수 있다. 나는 그걸 믿는다. 50대의 나는, 이제 변화에 대해서 조심스럽지만 더 단단한 믿음을 갖게 되었다.
뇌의 언어를 이해하라
이건 고백이다. 내가 상담을 할수록, 내 뇌도 회복되고 있다. 나는 더 천천히 말한다. 나는 내 감정을 덜 숨긴다. 나는 내담자 더 깊이 연결된다. 나는 더 많이 용서하게 되었다. 내 뇌는 신경과학적 관점에서 말하면, 전두엽과 편도체 사이의 신경회로 조절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인간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더 따뜻해지고 있다. 상담은 이중 치유다. 상담자는 도와주는 동시에, 자기 자신을 재구성하고 있다. 결론 같은 마무리, 혹은 마무리 같지 않은 결론은 2024년의 상담은 ‘뇌’를 이해하는 것서 출발한다. 하지만 뇌를 안다고 사람이 보이는 것은 아니다. 그 안에는 무작위성과 혼란, 감정과 공감, 뜨거움과 망설임이 공존한다. 나는 매일 뇌에 대해 공부한다. 책도 읽고, 논문도 본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이 배우는 건, 상담실에서 눈빛 한 줄 , 미묘한 떨림, 그리고 “그냥, 모르겠어요”라는 말 뒤에 숨겨진 그 사람만의 뇌 반응이다. 나는 오늘도 묻는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 그리고 뇌는 대답한다. 아주 작은 신호로. 나는 그것을 듣는다. 내 뇌로, 내 마음으로, 내 존재 전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