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이 아닌 감정 지도
심리학이 때때로 너무 딱딱하다고 느껴진다면, 그건 우리가 ‘사람’을 놓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상담학을 공부하면서 여러 지식을 배우고, 여러 진단검사에 대한 이론을 배웁니다. 이럴 때 자주 놓치고 가는 것이 사람입니다. 이론보다 사람이 먼저 보였을 때 상담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럴 때 유용하게 사용되는 이론이 PERMA 입니다. 하지만 PERMA 모델은 이론이 아니라, 감정의 지도입니다. 행복을 설계한다는 말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건 설거지 후 마시는 커피 한 잔, 우연히 눈이 마주친 강아지의 꼬리 흔들림, 잠들기 전 누군가의 안부를 확인하는 마음일 수 있어요. 50대 여성 임상심리사로서 저는 이 모델을 ‘적용’ 하기 위해 애쓰지 않습니다. 그저, 사람을 먼저 보고 그 사람의 인생을 함께 살아냅니다. 이 글은 감정으로 써 내려가는 PERMA의 이해입니다. 여러분들도 PERMA 에 대해 정리해 보면서 자신의 삶에 적용해 보고, 자신의 감정지도를 만들어 보면 좋겠습니다.
PERMA 모델 완전 정리
1. P – Positive Emotion (긍정 감정): 기쁨은 단순해야 오래간다
긍정 감정은 꼭 유쾌하거나 활짝 웃는 감정만은 아닙니다. 기쁨, 감사, 평온, 안정, 경이로움… 그 모든 감정이 P에 속합니다. 50대가 되고 보니, 가장 오래 남는 감정은 경쾌함보다 ‘따뜻함’이더군요. 남편이 밥 한 숟갈 먹고 “맛있다”라고 말할 때나 딸이 퇴근 후 도착 문자 한 통 남겼을 때, 아침에 바람 한 줄기가 창문을 타고 들어올 때 좋은 감정을 느낍니다. 이 감정들이 내 하루를 ‘괜찮게’ 만들어줍니다. PERMA에서 가장 기본이지만, 가장 잊기 쉬운 것이 바로 ‘P’입니다. 긍정 감정을 느끼기 위해 하루에 한 번만 오늘 느낀 고마운 순간을 적어보세요. “정확히 뭐가 고마웠지?”라는 질문을 매일 던지면 감정의 질감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2. E – Engagement (몰입): 몰입은 ‘즐거움’이 아니라 ‘시간을 잊는 경험’
심리학자 칙센트미하이의 몰입(Flow) 이론을 기반으로 하는 개념입니다. 하지만 진짜 몰입은요, 열정도 의무도 아닌 ‘내가 사라지는 시간’입니다. 내가 온전히 사라지고 없을 때 진정한 몰입이 일어납니다. 나는 뜨개질을 하며 그런 몰입을 경험했습니다. 어떤 어르신은 정원에 물을 줄 때 그런 몰입을 하신다고요. 한 청소년은 그림 그릴 때, 한 직장인은 보고서를 쓸 때.
몰입은 성취보다 ‘자기와 연결되는 시간’이에요. 몰입은 자기 효능감과 정체성 회복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우리는 무언가에 몰입할 때, 그 대상보다도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법’을 배우게 되죠.
3. R – Relationships (관계): 공감 없는 연결은, 더 외롭다
긍정심리학은 관계의 ‘숫자’보다 ‘질’을 말합니다. 여러 사람과 얕은 관계를 맺는 것보다 한 사람과 깊게 연결되는 게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상담사로서 저는 수없이 봤습니다. “가족은 있어요. 친구도 있어요. 그런데 나는 너무 외로워요.”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을요. 관계는 수가 아니라, 정서의 교류입니다. “나는 너의 감정을 느낄 수 있어.” “네가 울 때, 나는 말없이 옆에 있을게.” 이런 말들이 관계를 회복합니다. 예를 들어 하루에 한 번 누군가에게 “고마워” 문자 보내기, 어색한 대화보다 “오늘 감정이 어땠어?”라고 물어보기, “왜 그렇게 느꼈어?” 대신 “그랬겠다”로 반응하기 등입니다.관계는 감정의 거울입니다. 좋은 관계는 내 감정을 비추는 가장 따뜻한 장면이에요.
4. M – Meaning (의미): 의미는 거창하지 않다. 지금의 이유일 수 있다.
많은 이들이 "내 삶은 무슨 의미가 있지?"라고 묻습니다. 하지만 의미는 ‘목표’가 아니라 ‘지금의 이유’ 일 수 있습니다. 아이가 나를 엄마라고 불렀을 때, 친구가 내 말을 기다려줘서, 내가 아직 감동받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이유들이 삶의 의미를 부여합니다. 저는 의미를 ‘정리’하는 것보다 그냥 ‘느껴지는 상태’로 남겨두는 것이 더 좋다고 느낍니다. 의미는 머리로 쓰는 게 아니라, 몸으로 느끼는 감정입니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가’보다 ‘나는 지금 이 순간 어떤 마음인가’가 더 중요해요.
5. A – Accomplishment (성취): 성취는 작아도 된다. 오히려 작을수록 좋다
긍정심리학의 마지막 축인 A, 성취. 하지만 많은 분들이 여기에 걸려 넘어지십니다. “나는 해놓은 게 없어요.” “무언가 이룬 게 없어요.” 하지만 성취는 졸업장이나 승진이 아니라, 하루를 잘 넘긴 사람의 마음에 있습니다. 오늘도 운동 갔다 오신 어르신, 밥 차리고 다시 설거지까지 마친 주부, 아이에게 한 번 덜 화내려고 노력한 엄마의 모습에서 작은 성취를 보게 됩니다. 이런 ‘작은 성취’가 반복되면 삶 전체가 자존감이라는 옷을 입게 됩니다. A를 위한 질문 3가지를 매일 나에게 해보세요. 오늘 내가 한 일 중, 나를 웃게 한 건? 남이 몰라도 나는 기억하고 싶은 내 행동은? “수고했다”라고 말해주고 싶은 순간은?
성취는 기억될 필요는 없지만, 느껴질 필요는 있다. 그 느낌을 갖고 있으려면,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에 성취를 위한 3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해보는 시간을 가져 보자.
실전 응용 사례 3가지
사례 1. 70대 할머니와의 관계 회복
손주와 단절되었다고 느낀 어르신이 있습니다. 긍정 감정을 찾는 연습을 하였고 손주의 편지 한 통 읽으며 눈물이 났고 쌓였던 감정의 아픔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관계 회복을 위해 다시 작은 선물을 준비하며 손주와의 만남을 준비하였습니다. 결국 PERMA를 통해 자신의 ‘의미’를 되찾게 되었습니다.
사례 2. 40대 전업주부의 무기력 개선
몰입 활동을 위해 아침마다 15분 정원 손질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성취 인식을 얻기 위해 ‘오늘 꽃이 하나 폈다’는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습니다. 기록을 한지 이틀, 삼일, 일주일이 지나며 정서 회복 시작되었습니다. 정서회복이 되면서 전업주부의 무기력이 개선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례 3. 고등학생 내담자의 자존감 상승
의미 찾기: "나는 누구에게 힘이 되었을까?" 질문을 통해 나의 행동과 생각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하였습니다. 긍정 감정 일지 쓰기를 통해 매일 하나씩 좋았던 점을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3개월 후 자기소개서에 "나는 연결하는 사람입니다."라고 적게 되었고 자신의 의미를 찾게 되었습니다. PERMA는 ‘정리하는 이론’이 아니라 ‘살아내는 감정’입니다. 50대가 되고 나니 이제는 감정을 분석하기보다 함께 있어주는 기술이 더 중요하더군요. PERMA는 그런 학문입니다. 설명보다 감각, 개념보다 연결, 성취보다 존재를 더 생각해 보는 것 같습니다. 심리학을 공부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당신이 지금 감정을 느끼고 있다면, 그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 이미 PERMA 안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걸 기억하세요. 긍정은 외우는 게 아니라, 살아내는 겁니다.